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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공정하다는 착각

2021.09.27

‘정의란 무엇인가’로 잘 알려진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교수는 이 책에서 능력주의의 폭정으로 인한 미국 사회의 많은 문제들을 고민하며, 그 과정에서 공동선(common good)의 정치를 찾아 나서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샌델 교수는 서론에서 먼저 대학 입시 문제로 화두를 연다. 그에 따르면 미국에서 대학에 들어가는 문은 뒷문, 옆문, 정문 세 가지가 있다. 뒷문은 거액의 기부입학, 옆문은 뇌물과 성적 조작 등을 이용한 부정입학, 정문은 능력에 근거한 입시제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든다. ‘과연 정문이라고 진짜 공정할까?’ 저자는 실력을 경제적 우위와 구별해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이는 미국 학생들의 SAT 점수와 집안 소득의 비례관계나, 아이비리그 대학생 삼분의 이 이상이 소득 상위 20% 이상 가정 출신이라는 것으로 충분이 증명되는 듯하다. 물론,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작년 SKY 대학 입학생의 최소 55% 이상이 소득 9~10분위 고소득층 자녀였다. 이러니, 정문이라고 해서 과연 그 경쟁이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싶다.

대학 입시만이 능력주의의 문제는 아니다. 능력주의 윤리의 핵심은 자신의 성공이 스스로의 노력과 실력 덕분이라고 믿는 것이다. 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자리와 재화를 얻었다면 그에 합당한 자격이 있는 것이며, 사회적 성공이 곧 미덕이며 선이다. 이런 식의 사고는 우리 자신을 자수성가한 자기충족적 존재로 여기게 되며 우리보다 운이 덜 좋았던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힘들게 한다. 내 성공이 순전히 내 덕이라면 그들의 실패도 순전히 그들의 탓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논리는 능력주의가 공동체의식을 약화시키는 논리로 기능한다. 

능력주의가 야기하는 문제들을 세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노골적인 불평등이 이어지고 사회적 이동성이 가로막힌 상황에서 승자는 교만하게 하고 패자에게는 굴욕과 분노를 안겨줘 사회적 연대를 약화시킨다. 둘째, 대학 학위가 품격 있는 삶을 살기 위한 기본 조건이라는 ‘학력주의 편견’을 조장하여 노동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의 위신을 떨어뜨린다. 셋째, 정치, 사회 문제를 고학력자들이 더 잘 풀 수 있다는 기술 관료주의는 민주주의를 타락시키고 일반 시민의 정치 권력을 거세하는 상황을 초래한다.

그렇다면, 과연 완벽한 능력주의는 정의로울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겠지만, 완벽하게 공정한, 누구나 공평하게 겨룰 수 있는 완전히 평평한 운동장에서의 공정한 경쟁 상황을 구현했다고 치자. 그러면 정의로운 사회가 이루어진 걸까? 저자의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그 이유는 능력주의의 이상은 평등이 아닌 이동성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부자와 빈자의 자식이 장기적으로, 능력에 근거하여 서로 자리를 바꿀 수 있기만 하다면, 모두가 성공의 사다리에 오를 기회만 있다면, 그 단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는 문제삼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치유하려 하지 않는다. 불평등을 정당화하려 한다. 

능력주의 옹호자들은 모두가 공평한 조건에서 경쟁한다면 그 결과는 정당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공정한 경쟁에서도 승자와 패자는 나온다. 물론 공정한 경쟁에서 이겼다면 보상받을 만하다. 그렇다면, 그 재능은 과연 자신만의 것일까? 

능력주의는 그것에 편승치 못한 자들을 루저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명문대를 나오고 사회적 명망을 얻은 자들은 오롯이 그것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이룬 성과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그 모든 경쟁과 시험에서 공정하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아서 이기고 선발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초예측>에서 조앤 윌리엄스 교수도 미국의 엘리트들이 자신의 출발점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자신의 위치에 있는 것은 자신이 똑똑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태어나면서 이미 3루에 서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3루타를 쳐서 3루까지 달린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것에 있었고, 날 때부터 타석에 서보지도 못한 사람에 비하면 홈베이스를 밟을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인재 선별기’가 된 고등교육은, 어떻게 능력에 따른 사회적 상승을 약속하면서도 사실은 특권을 강화하고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공통 도덕성에 유해한 성공관을 심어주는가?

미국 고등교육의 능력주의화는 1950~1960년대에 시작되었다. 이 당시에는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 이른바 아이비리그 빅3로 불리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학습 능력보다 ‘어느 고등학교(개신교를 믿는 상류층 출신들이 다니는 사립 기숙학교)를 나왔느냐’와 ‘학비를 낼 재력이 되느냐’가 더 중요했다. 하버드대 총장이었던 제임스 브라이언트 코넌트는 이런 세습 엘리트 체제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오직 지적 능력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수학능력평가시험 즉, SAT를 개발해 중서부 공립학교를 대상으로 장학생을 뽑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넌트의 장학 프로그램은 미국 전역을 포괄하게 되었고, 마침내 SAT는 전국 대학의 입학을 좌우하는 시험이 되었다. SAT를 통한 대학입학 시스템은 미국 국민을 유능자와 무능자로 판별하는 ‘인재 선별기’가 된 것이다.

하버드를 능력주의적 기관으로 탈바꿈시키려했던 코넌트는 자신의 비전을 ‘계급 없는 사회를 위한 교육’이라고 제시했다. 과연 그 시도는 성공했을까?

아마도 처음 SAT가 도입되었을 때는 몇몇 가난하고 똑똑한 공립학교 학생이 하버드에 입학해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생각지도 못한 기회의 사다리를 얻은 셈이었을 것이고, 이러한 방식은 미국 사회의 기회의 평등 원칙에 기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능력에 기준한 유동적 사회는, 세습적 위계질서는 벗어났지만 불평등을 야기했다. 또, ‘최고의 천재’를 예찬하고 보상하는 시스템은 그 나머지를 격하시켜며, 의도적이든 아니든 ‘비천한 자들’이라고 멸시하기 쉽게 만들었다.

물론, 코넌트 임기 중에도 하버드에는 동문 자녀나 상류층 입학이 대다수였고, 특히 동문 자녀들은 거의 탈락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SAT는 계급을 없애는데 기여하기 보다는 오히려 계급을 공고히 하는데 기여한 듯 보인다. SAT가 수학능력이나 타고난 지능을 측정하는 시험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SAT 점수는 응시자 집안의 부와 매우 연관도가 높다. 소득 사다리의 단이 하나씩 높아질수록 SAT 평균점수는 올라간다. 부잣집(연소득 20만달러 이상) 출신으로 1600점 만점에 1400점 이상 기록할 가능성은 다섯에 하나다. 반면 가난한 집(연소득 2만달러 이하) 출신은 그 가능성이 오십에 하나다. 또한 고득점자들은 그 부모가 대학 학위 소지자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인재선별기로서의 대학입학 시스템과 고등교육에 대한 샌델 교수의 대안은 먼저, 제비뽑기가 있다. 아이비리그 대학의 높은 경쟁률과 학생들의 수준을 생각했을 때, 어느정도이 자격을 갖춘 학생이라면 누구를 선발해도 모두 훌륭한 학생이기 때문에, 제비뽑기로 선발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정 관문을 넘는 조건으로만 능력을 보고, 나머지는 운이 결정하기 때문에 적어도 영혼까지 끌어 모아 스펙을 채우고 강박적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경험에서 학생들을 해방시켜줄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 능력주의적 오만에서 벗어날 수 있게도 할 수 있다. 어찌되었든 정상에 오른 사람은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가 아니라 운이 좋았던 것이며, 탈락한 사람이나 자신이나 비슷하다는 것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문제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저자도 이미 인지하고 있는 바, 별로 현실적이지는 않은 대안이다.

또 하나는 직업훈련에 예산을 더 많이 투입하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 정부가 대학과 고등교육에 쓰는 돈에 비해 노동자 훈련과 재훈련을 위해 쓰는 액수가 터무니없이 적다고 지적한다. 미국인은 겨우 삼분의 일만이 학사학위를 갖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유형의 교육 훈련을 통해 좋은 일자리에 접근해야 하는데, 4년제 학사 학위만이 성공으로 가는 관문이라는 주장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교육과 투자를 방해할 뿐 아니라 노동계급이 하는 유형의 일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도록 하고 있다. 

능력주의의 폭정이 어떻게 일의 존엄성을 해치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 존엄성을 다시 세울 것인 가?

1970년대에는 대학 학위가 없어도 좋은 일자리를 구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편안한 중산층의 삶을 사는 일이 가능했다.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말이다. 하지만, 지난 40년간 대졸자와 고졸자의 수입 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세계화 시대가 고학력자에게는 많은 보상을 해주었지만, 일반 노동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 미국 남성의 중위소득은 물가 연동 실질 가격으로 볼 때 반세기 동안 답보 상태라고 한다. 그러니 그들이 불행감에 시달리는 건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그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경제적 곤경만이 아니다. 능력주의 시대는 노동자들에게 더 악랄한 상처를 입히고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의 존엄성을 깍아내리고 있는 것이다. 시장 가치가 공동선에 기여하는 가치와 비례한다고 보는 잘못된 시각은 노동자들이 하는 일이 사회에 기여하는 가치를 폄하하며 그들에게 자괴감을 안겨준다. 

미국 노동계급의 마음의 상처로 빚어진 현상은 구직 포기뿐만이 아니라 죽음으로까지 이어진다. 20세기 들어 현대 의학이 질병을 몰아내며 기대 수명이 계속 늘어났지만, 2014년부터 미국인의 기대수명은 3년 연속 내림세를 보였다. 이는 자살, 약물 과용, 알코올성 간질환 등으로 인한 사망률의 증가 때문인데, 경제학자 앤 케이스와 앵거스 디튼은 이것을 ‘절망 끝의 죽음’이라 명명했다. 물질적 빈곤보다 더한 뭔가가 이들에게 죽음에 이르는 절망을 이끌어낸다. 학력이 모자란 사람이 능력주의 사회에서 특별히 겪는 고통이 있다면 명예와 보상의 문제다. 케이스와 디튼은 “절망 끝의 죽음이란, 저학력 백인 노동자에게 장기적이고 완만한 삶의 방향 상실을 나타낸다.”고 결론낸다.

실직자의 고통은 다만 소득이 없다는 데서 나오지 않으며, 그들이 공동선에 기여할 길이 막혔다는 데서도 비롯된다. 저자는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이 놓치고 있는 포인트가 바로 여기라고 꼬집는다. 그들은 노동계층과 중산층 유권자들에게 분배적 정의를 더 강화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경제성장의 과실에 대해 더 공정하고 더 적극적인 접근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유권자들이 그보다 더 원하는 것은 그들이 정의에 더 기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사회적 인정과 명망을 얻고, 다른 이들이 필요로 하고 가치를 두는 일을 할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여기에 사회적 상승의 담론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통치 엘리트들은 이렇게 조언한다. “대학에 가세요! 재무장을 하고 글로벌 경제전쟁에서 승리하세요! 당신이 얻을 수 있는 건 당신이 배운 것에 달려 있답니다 하면 됩니다!” 이미 아메리칸 트림이 신화에 불과하다고 결론났는데도 말이다.

이것은 글로벌, 능력주의적, 시장주도적 시대의 관념론이다. 승자에게 아첨을, 패자에게 모욕을 던지는 관념론. 하지만 2016년 그 환상은 끝났다. 브렉시트 가결과 트럼프 당선을 맞이하여, 그리고 유럽의 초극우 민족조의, 반이민 정당들을 보며 그 프로젝트는 완전히 너덜너덜해졌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이제 대안적인 정치 프로젝트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물론 샌델 교수가 현실적인 답을 다 제시해줄 수는 없다. 다만,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은 우리의 행운 덕이지 우리 업적 덕이 아님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행운과 우연을 인정할 때 생기는 겸손이 우리를 가혹한 성공윤리에서 돌아설 수 있게 해주며, 더 관대한 공적 삶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제임스 애덤스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것은 단지 자동차나 높은 급여에 대한 꿈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여 뭔가를 최상까지 이뤄낼 수 있는, 그리고 태생이나 지위와 관계없이 자기 자신으로서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 질서의 꿈이다.”

우리는 대부분 기회가 공평하고 과정이 공정했다면 그 경쟁의 결과는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소위 ‘아빠 찬스’라는 말로 제기된 문제들은 경쟁이 공정하지 않다는 점이 쟁점이었다. 공정한 경쟁만 한다면, 그 결과로 야기되는 문제들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인 듯 보인다. 사다리의 단이 점점 멀어져도 사다리만 존재한다면 문제가 없는 것일까? 이 치열한 경쟁에서 탈락한 자들의 분노와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것이며, 어린 학생과 젊은이들을 끝도 없는 테스트와 스팩 쌓기로 내몰고 있는 현실도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라면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많은 고민이 생기는 대목이다. 

누구나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의 참 뜻이 성공의 담론에만 있지 않다는 것은 놀랍다. 과연 우리가 제임스 애덤스의 시각처럼 누구나 자신의 현재 위치와 상관없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며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남들에게 인정받으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하기 직전 연설에서 이야기했던 청소 노동자들을 존경하는 사회는 올 것인가? 이런 이상적인 미래를 당연하게 그리며, 꿈꿀 수 있는 현실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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